독립운동가 중 한 명인 이우석 선생은 1994년 8평짜리 단칸방에서 생을 마감했다.
그는 3·1운동이 일어난 1919년, 항일운동을 위해 압록강을 건넜다.
이후 무장독립운동단체 북로군정서에 들어가 무기를 운반하는 임무를 맡았고 분대장으로 활동하며 청산리 전투에도 참전했다.
광복 이후 1947년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궁핍한 삶에 찌들어 살았다.
서울 관악구 철거민촌에 있는 무허가 쪽방에서 지내며 행상과 막노동으로 생계를 유지하며 지냈다.
힘든 삶을 유지하던 상황에서도 이우석 선생은 오랫동안 독립유공자 신청을 하지 않았다.
한일협정 찬성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는 그 서류에 서명을 하는 행위는 나라를 팔아먹는 일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1994년 6월 26일 99세의 일기로 쓸쓸히 세상을 떠났다.
서울시에 따르면 현재 서울 거주 중인 독립유공자 3대까지의 후손은 약 1만7,000명이다.
그중 74.2%는 월 소득이 200만원에 못 미친다.